뉴욕(New York)의 이별
“프리즈 쇼우 미 더 웨이 투 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것으로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서울에서 오셨어요? 우리도 한국 사람에요.
반가워요. 마침 저희들도 박물관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자연스럽게 우리 셋은 함께 어울렸지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녀의 동생을 만나고 보니요.
잘되었지 싶더라고요.
관광을 간 것이 아니라 업무 출장이었으니 시간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그 날 일정을 온전히 맨해튼 시내 관광에 할애하기로 마음먹었지요.
그 자매네는 지구촌 시대를 선도하는 듯 참으로 국제적인 가족이더라고요.
부모는 서울에 살고 있고요.
맏 언니는 캐나다에 둘째인 그녀는 일본 오사카에 산다고 했어요.
막내는 브라질에 이민 가서 살고요.
조신한 그녀가 말했어요.
"동생을 만나 둘이 함께 맏언니 집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캐나다에 가기 전에 뉴욕관광이나 하려고요. 생각지도 않게 이곳에서 서울 분을 만나서 반가워요."
사실 저도 반갑더라고요.
해외에 나와 교포를 만나니 무척 친근감이 가고요.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마루소의 청순한 이미지를 흠모한듯 첫 인상이 좋고요.
평일 날인데도 박물관은 관광객으로 붐볐어요.
셋이 어울려 다니면서 2층에 자리 잡은 한국관도 가보았고요.
중국관에 들러 규모가 아주 큰 부처님을 그린 벽화도 구경했어요.
남들은 우리를 다정한 한국인 부부와 처제 정도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요.
사실 그랬어요.
교양있고 청순한 소녀같은 언니가 비슷한 연배로서 편하더라고요.
수십년이나 연하인 활달한 동생보다는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었어요.
“대학시절 첫 미팅에서 건방진 남학생을 골려 주었지요. 호! 호호!”
처음 만난 사이지만 마치 전생 인연인 듯 한 느낌으로 다가 오더라고요.
"일본인 남편과 사는데 장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아요. 아니, 처음 만난 분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호! 호!"
마치 지난 첫 사랑이라도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감성이 살아 나더라니 까요.
글쎄 무얼 어쩌자는 것인지 제 마음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제 마음의 흐름대로 맡겨 둘 수밖에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면 어김없이 동생이 끼어들었어요.‘여동생은 말고 언니만 만났더라면 좋았겠다. 오붓하게 둘만의 밀어를 나눌 수도 있을텐데’그런 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동생은 더욱 끼어들었어요.
마치 제가 자기 연인이라도 되는 양 아주 친절하게요.
마다하지 않았다면 제 팔에 안겨 걸을 모양새로 안겨 오더라니 까요.
박물관 관람료를 제가 지불했으니 오찬은 자매측이 사겠다고 했어요.
양식이 다소 식상했던 저는 그 자매네가 인도하는 대로 한국인 식당으로 갔지요.
김치찌게가 그리도 맛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이곳에서 개최되는 남북 종교인 회의에 참관하고자 왔어요. 두 번째 왔지만 아직도 미국은 낯이 설어요.”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온 맘을 주어 사랑했던 남자에게 실망했어요. 한국 남자들이 싫어 일본인 남자 만났지요. 오늘 보니 한국 남자도 이미지가 좋네요.” 그녀의 웃는 모습이 참으로 선녀처럼 곱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곱디 고운 얼굴 한구석에 무언지 모를 쓸쓸함이 엿보였어요.
낙엽지는 가을 날 오솔길을 쎈치한 감상에 젖어 머리 풀어 헤치고 걸어가는
외로운 여인의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뭐 그랬어요.
청순한 그녀가 독백처럼 혼자 말하더라고요.
“왜 우리는 이제야 만났을까? 대학시절 만났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
인근 맨해튼 센트럴파크 대공원에 들러 도심의 휴식공간이 주는 유쾌함도
맛보았어요.
백인마부가 이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경내를 돌았어요.
마치 한국 황태자 부부가 뉴욕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사열하듯이요.
마침 축제에 참가하였던 기마경찰대가 우연히 앞뒤로 따라 붙어 경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요.
'남이야 뭐라든지 황태자 기분 좀 낸다는데 뭐 잘 못이냐고라?
뭐 누구한테 피해 준 것 없고, 누가 벌금 내라는 것도 고발당하는 것도 아니고,다 저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 라요'
실제로 공원을 거닐던 서양인들이 손을 흔들어 환영해 주기도 했어요.
저 또한 그들의 성원에 환한 미소로 응답해 주었고요.
그 동생은 언니를 앞자리로 밀어내고 제 옆자리에 앉더라고요.
제 의사는 아랑곳없이 이젠 좀 친해졌다고 마치 연인처럼 행동했어요.
언니라면 더 좋았겠지만 싫지는 않더라고요.
순간적으로 별 불순한 상상이 다 떠올랐어요.
제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하였고요.
‘내일 워싱턴 대사관 방문 일정을 취소해 버릴까?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단 둘이서만 만나자고 할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주님께서 마음 속으로 짖는 죄도 간음이라고 가르치셨는데, 사람의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고 했지?
어째 내 마음이 이리 혼란스럽다냐? 눈앞에 있는 두 자매는 무슨 인연이라냐?
인연은 무슨 얼어 죽을 인연이라고! 이 눔아! 정신차려라!
훗날 뒤져 지옥 유황불 속에서 통닭구이처럼 달구어 지기 전에'
미국에 가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어요.
소년 시절 담임선생님 말씀 때문에요.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2층의 마천루가 뉴욕에 있단다. 부지런히 배우고
얼른 자라서 넓은 세상에 나가 보고 느끼고 더 배워라.” 빌딩 102층 전망대에 올라 맨해튼 시가지를 내려다보았지요.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 강을 바라 보노라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86층 전망대로 내려와 그 동생이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언니와 저녁 일정을 의논하는데 눈치 없이 동생이 또 끼어들더라고요.
“우리 숙박하고 있는 호텔 스카이라운지가 전망이 좋아요. 거기서 저녁에 다시 만나요.”
'아니, 누가 자기랑 논다고 했냐고라? 나이도 어린 것이 남 작업도 못하게 시리’ 사실 저녁 약속을 잡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일편단심 제 순정을 믿어 주는 제 착한 아내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고요.
그 자매들도 다 집안에 버젓이 남편과 애들을 둔 가정주부들이었어요.
다만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길에 스트레스를 해소 하느라고 잠시 조금 흐트러 진 것 뿐이지요.
고국의 남자를 우연히 만난 것이 반갑고 기분이 유쾌해서요.
카사노바도 아닌 저로서는 언니와 동생 둘 중에서 택일 할 만한 재주도 능력도 없었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요.
설사 일탈했다고 한들 고해성사를 보아야 할 텐데 어쩌겠냐고라?
신부님한테 가서 부끄럽게 무슨 말로 변명을 하냐고요?
무언지 모르게 그냥 헤어진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어요.
그 자매나 제가 정 때문에 미련 때문에 만날 때 보다 이별을 더욱 어려워 한 것이지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어요.
“자! 내려가요. 얼른 타요.”
자매가 타고 뒤따라 타려는 찰나에 문이 닫혔고 무심한 기계는 내려갔지요.
“아차! 이럴 줄 알았으면 서로 명함이라도 건넬 것을 어쩌나?”
그 자매와의 만남은 거기까지였어요.
제가 그 자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국제적인 가족이라는 것 하고요. 정이 아주 많은 친절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에요.
특히 언니가 첫 인상이 청순하고 교양이 풍부해서 참 좋았어요.
일본인 남편 만나 오사카에 살고 있다는데 연락처는 서로 모르고요.
동생분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느낌이 좋더라고요.
아쉬움을 남긴 뉴욕의 짧은 만남과 이별이여!
어디에서든 행복하시길 빌어요.
방방곡곡 윤용범 독자 http://bbggnews.com
『방방곡곡 1천만 독자 방문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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